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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주愛酒] 이십도 - 국순당
    음식/술 2019. 2. 27. 14:22

    나는 소주를 주로 마신다. 맥주나 와인은 배가 부르고, 다 마시고 난 뒤 혀 안 쪽에 남는 텁텁한 느낌이 싫어서 즐기지 않는다. 막걸리는 향과 맛을 좋아하지만, 역시나 금세 배가 차서 자주 즐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주는 자주 마시기에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꽤나 독해서 목넘김이 좋지 않기에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리하여 먹을 만한 술이라는게 소주나 청주 정도가 있다.


    청주는 향이 좋고 맛 또한 좋다고 느껴서 간혹 마시는 편이지만, 2~3병 쯤 마셨을 무렵에 취하는 것보다 배가 먼저 찬다는 이유 때문에 소주로 주종을 변경하곤했다.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고 소주를 즐겨마시지만, 향이라고는 알콜 향뿐이고 맛이라고는 인위적인 단 맛뿐인 소주를 정말 맛이 좋아서 먹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술 중에서는 가격이 가장 저렴하고, 어릴적부터 마셔와서 입에 익숙하고, 배부르기 전에 취하는게 가능한 술이기에 주로 마시는 것에 가깝다.


    그러던 중에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술을 만났다.


    진하지만 부드러운 남자의 술 이십도.

    국순당에서 나온 술이다.


    Ref. 국순당 홈페이지 (http://www.ksdb.co.kr/ourbrands/new_etc_1.asp)


    처음 마셔 본 것은 작년 가을 쯤이었던 것 같다. 신촌의 한 술집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곱창집이었는데, 동행한 이는 곱창집이 아니라고 하니 명확하지는 않다. 소주를 한병 마신 상태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새로운 술이 바로 '이십도'였다. 국순당이 만들었다고 하고, 청주를 담을 때나 쓰는 누런 병에 '이십도'라고 제목을 붙여놓은 걸 보니 나의 주酒추신경이 곤두 섰다. 청주가 20도의 도수라..... 반신반의하며 술을 주문했고, 앉은 자리에서 5병인가를 더 주문해서 아주 기분좋게 그 술집을 나왔었다.


    청주를 마시기 전 나는 달큰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있다. 누군가는 쌀의 향이라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꽃 향기 같다. 그 향이 좀더 진해지면 중국 고량주와 같은 향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또 고량주에서 나는 향은 역하게 느껴진다. 내 후각에는 청주에서 나는 술의 향이 가장 감미롭다. 향을 느낀 후 혀에 가져다 놓으면 그 맛 역시 일반 청주와 유사하다. 다만 차이점은 그 맛이 더욱 진하다는 것이다. 입안을 진하게 감싸는 술의 맛이 훌륭한데, 소주와 같이 혀 안에 남는 알콜의 잡스러운 맛은 전혀 없다. 독한 술의 느낌은 전혀 없고, 묵직하게 혀를 감싸는 술의 진한 맛이 지나간 뒤 처음에 맡았던 상쾌한 향만이 입안에 남아 다음 잔을 채우게 한다. 그런데 20도이다. 요즘 소주들도 19도가 안되는 술이 많다. 그런데 20도이다. 맛있다고 계속 마시면 금세 취한다. 배부를 새 없이 맛있는 안주와 맛있는 술에 촉촉히 젖게 된다. 최고의 술이다.



    최고의 술인데 파는 곳이 많지 않다. 서울에서 한번 마셔본 뒤에 대전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지만 이십도를 파는 곳이 없어서, 언제 한번은 국순당 고객센터로 질문을 한적도 있다. 어디서 파는지 알려달라고..... 딱히 마트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여하튼 매우 아쉬웠다. 그렇게 만날 기회가 없으니 조금씩 조금씩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 광장시장의 여러 가게들에서 이십도를 파는 것을 보았고, 다시 이 친구와 조우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역시나 훌륭한 성품의 친구였고, 다시 만난 그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동네에서 이름 깨나 소문난 주당들이라면 꼭 한번쯤은 이 친구와 만나서 시간을 보내봐야 함에 틀림이 없다.


    마침.


    - Phil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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