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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한궁양꼬치 - 양꼬치 _ 190220음식/술 2019. 2. 21. 13:26
학교를 다닐 때 궁동이라는 곳은 매우 먼 곳이었다. 홈그라운드인 어은동에서 이미 거나하게 취했지만 왠지 술과 사람이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딱 한군데만 더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무렵의 시간은 매우 신비롭게도 언제나 새벽 5시였다. 자정에 만나면 그렇게도 반갑게 맞아주던 어은동 술집 사장님들은 새벽 5시에 가게 문을 여는 내 앞에서 언제나 손을 좌우로 흔드시며 등짝을 조금 세게 토닥거리셨다. '지금처럼 해 뜰 때 말고, 내일 해 떨어지거든 오세요'라는 평소에는 쓰시지도 않으시던 존댓말과 함께 내 무리를 내보내시곤 하셨다.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해뜨고도 장사를 하는 궁동이 유일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해 비틀거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큰 소리로 웃으며 터벅터벅 한참을 걷다보면 땀이 삐질 날 때 쯤 도착하는 곳이었고, 걸어오는 동안 술이 다 깨어버렸다는 어줍잖은 핑계를 대며 호기롭게 '소주 각1병 주세요!!'를 외쳤던 장소가 바로 궁동이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기숙사에서 나와 사느라 어은동을 자주 찾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궁동은 대한민국 탱고의 역사적 성지인 #Azucar (아수까)가 19년째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보니, #Tango en mi (땅겐미)에서 활동하는 동호회원으로서 아무래도 궁동의 술집을 뒷풀이 장소로 자주 찾고 있다. 한궁양꼬치는 궁동에서 자주 찾는 약 3군데 술집 중 하나이다.
사실 나는 양꼬치라는 메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자동으로 꼬치가 돌아가며 손쉽게 구워진다고는 하나 금세 익거나 타버리기 일쑤이고, 정성들여 익힌 고기를 윗칸으로 옮겨도 술꾼들이 한잔 두잔 잔을 나누는 사이에 육즙이 다 말라버려서 퍽퍽한 고기를 안주로 삼아야하니 좋아하는 음식일리가 없다. 그래도 이 곳, 한궁 양꼬치의 꼬치는 어느정도 두툼하여서 구운 뒤에 육즙이 적당히 살아있어서 양고기의 좋은 풍미를 느낄 수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 양고기의 냄새가 역해서 못 먹는 경우가 있겠지만, 이 집의 고기에서는 누린내가 전혀 없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누린내가 없어서 한 입 먹어보면 소고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물론 향과 맛에 민감한 나는 어느정도의 양고기의 풍미를 즐기기에 이 집의 고기는 매우 만족스럽다.
내가 양꼬치를 선호하지 않으면서도 양꼬치 가게를 찾는 이유는 사실 정통 중화풍 음식들 때문이다. 꿔바러우, 온면, 지삼선 등을 먹어보고 양꼬치 가게의 음식 수준을 평가하는 편인데, 이 가게를 계속해서 찾게 되는 이유는 딱 2가지 메뉴로 정리된다. 하나는 위의 사진과 같은 볶음밥이고, 나머지 하나는 건두부 무침이다.
볶음밥은 고슬고슬한 밥 느낌이 일품이다. 밥의 쌀알을 한알 한알 감싸고 있는 기름에 채소의 향이 가득 베어 있으며, 적당히 간이 되어 곡기의 단맛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맛이다.
무엇보다 이 가게에서 가장 애정하는 '건두부 무침'은 흡사 비빔면의 맛과 유사하다. 비빔면보다는 고추기름의 풍미가 좋고, 산미는 조금 덜해서 단맛이 살짝 부각되는 맛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메뉴판에 있는 '건두부 무침'과는 다르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메뉴판 속의 '건두부 무침'을 주문하면 물엿이 들어간 경상도식 매운 멸치볶음 맛의 음식을 내어 줄 것이다. 처음에 말한 새콤달콤한 음식은 단골로 찾는 우리 동호회원들의 얼굴을 기억하시고 종종 서비스로 내어주시는 것이다. 인정이 느껴지는 음식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한궁양꼬치의 건두부 무침을 가장 좋아한다.
참석자 - 술쟁이 3명
병점 - 6병인가 7병인가..... 기억이 안 나네.....
마침.
- Philos -
#Azucar (아수까) : 2000년 여름, 한국 탱고의 본격적인 시작을 연 공간 (Dance hall)
#Tango en mi (땅겐미) : 2019년 현재 아수까에 19년째 자리잡은 대한민국 최장수 탱고 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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