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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와 함께 하는 물생활일상 2019. 4. 17. 18:50
어릴 적 집에는 커다란 어항이 있었다. 어항의 존재를 인식한 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쯤이었지만, 그 때는 어항만 있을 뿐 물고기는 살고 있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 '도대체 이 어항은 물고기가 살지도 않는데 왜 이 집에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부모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아부지께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니가 사자고 떼 썼어, 이놈아!' 하셨다. 내용인즉슨 아주 어린 시절의 내가 물고기를 너무나도 좋아했고, 또 아들이 한 고집하는지라 '물고기를 키우면 이 녀석이 좋아하겠구나'하는 마음으로 없는 살림에 큰 맘을 먹고 커다란 어항을 구매하신 거라고 했다. 물고기는 내가 키우고 싶어했던 첫번째 애완동물이었고, 나의 부모님은 어린 아들의 금방 싫증내는 성격을 그제서야 파악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우리집에는 사람 네명 이외의 생명체는 쉽사리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 자취를 시작하고 무언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테레비이든,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이든, 화단에 핀 꽃이든 생각없이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생각하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물고기를 키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때 부터 나의 물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나의 물생활은 석사 졸업 시즌과 함께 잠시 중단되었다. 집에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었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부족한 잠을 자고 다시 연구실로 가기 일쑤였으니 어항은 신경도 못 썼다. 그래서 그 때 당시에 키우던 구피들이 죽어나가도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고, 결국에는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바람에 죄책감과 실망감으로 물생활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약 2년 전 무렵부터 조금씩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여과 시스템이라든지 열대어에게 적절한 수온, 수질을 깨트리지 않으며 먹이를 주는 방법 등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다시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열대어의 경우에 나의 실수로 인해 쉽게 죽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서, 이번에는 생명력이 아주 강력한 친구들인 금붕어와 함께 물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금붕어 4마리 주황색의 큰 물고기들이 나와 2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이다. 처음에 데려왔을 때는 날렵한 유선형의 자그마한 몸집이었는데, 물고기도 주인을 닮는 건지 오래 살아갈수록 배가 빵빵해지는 것이 아주 귀엽다.
그리고 흰색에 붉은 무늬가 있는 친구들이 이번에 같이 생활하게 된 친구들이다. 한 녀석은 눈 위가 화장을 한 듯 붉은 색을 띄고 있고, 한 녀석은 립스틱을 바른 듯 입술이 붉게 되어 있다. 아직은 크기가 작아서 큰 금붕어 먹이도 먹지 못하고 있어서 구피 먹이를 조금씩 주고 있다. 이 녀석들도 언젠가는 덩치가 커지고 배가 빵빵하게 귀여워지겠지.
협탁 위의 어항 퇴근 후에 가만히 뻐끔거리는 금붕어의 입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금붕어는 키우기 어렵지 않다. 가격적으로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요즘은 다이소에 가도 1만원 정도면 어항과 금붕어를 뺀 나머지 것들을 준비할 수 있다. 작은 어항과 금붕어만 구한다면 어렵지 않게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 어떤 것이 되었든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이 가게 된다.
그리고 저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다른 사람들도 삶의 작은 위안을 갖길 바란다.
마침.
- Phil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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