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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와 유성 5일장일상 2019. 3. 9. 16:21
지금 집 위치로 이사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빠세권'이기 때문이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많이들 이야기하는 빠세권이란 탱고 바에 가까운 곳의 집을 이야기한다. 이전에는 통학 문제로 어은동이나 궁동에서 살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이 다양하게 생기면서 학교에서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에 부담이 없어졌다. 그래서 어디로 이사를 갈까 생각하던 중에 탱고 바와 가까운 장대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장대동은 여러모로 살기가 좋은 곳이다. 동사무소가 근처에 있고, 서울과 광주로 노선이 이어지는 유성금호고속이 매우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뿐만아니라 조금 더 걸어가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는 유성 시외 버스 터미널도 위치하고 있다. 시내 대중 교통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대전이지만 장대동 근처에는 유성온천 지하철 역이 자리 하고 있으며, 걸어서 5분 거리에 학교까지 이동이 가능한 104번 버스가 지나기도 한다. 또한 바로 근처에 대전 시내를 가로지르는 갑천변 자전거 도로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대전의 이곳저곳을 다니기에도 좋은 위치이다. 게다가 집값도 별로 안 비싼 지역이다.
이렇게 수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이 지역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5일장을 꼽을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 동네는 덕포시장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덕포시장은 매일 열리는 장터인데, 학원을 다니고 학교를 다닐 때에 꼭 이 시장을 지나야 했다. 매일 그 시장을 지나며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 조개껍질을 까던 할머니들과 고소한 냄새와 함께 풀빵을 팔던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한켠에서는 커다란 칼로 닭을 손질하는 아주머니가 계셨고, 또 한켠에는 밭에서 갓 따온 것과 같은 싱싱한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그래서 매일 보고 자랐던 시끄럽고 북적북적한 시장의 풍경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그런 시장의 풍경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대전에서 생활을 시작했었고, 학교 근처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런 모습을 구경할 수 조차 없었다. 대전에는 시장이 별로 없고 마트에 가야만 원하는 것들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장대동으로 이사한 후로는 시장을 곁에 두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유성 5일장은 5일에 한번씩 열리기에 5일장이라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매월 4일과 9일에 5일장이 열리는데, 가끔 주말과 겹쳐서 5일장이 열리는 날에 장을 찾고는 한다. 마침 오늘이 3월 9일이고 장이 열리는 날이길래 구경도 하고, 먹을 거리도 살 겸 집을 나섰다. 바닥에 방수포를 깔고 바구니마다 채소를 나눠 담은 모습과 박스 종이를 찢어서 매직으로 원하는 가격을 써붙인 모습들이 참으로 정겹다. 닭이나 오리를 파는 곳도 있다. 그리고 대전에서는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싱싱한 해산물도 있다. 구석에서는 건강에 좋다는 가루나 환을 판매하는 아주머니들도 찾아볼 수 있다. 호떡을 굽는 할머니와 그 앞에 새끼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갓 구운 호떡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모습도 정겹다. 요즘 어르신들의 인싸템이라는 휴대용 뮤직플레이어와 블루투스 마이크도 진열되어 있다. 이곳저곳을 발길 닿는 대로, 그리고 어쩔 때는 앞사람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다보면 새로운 길이 나타나고 빈대떡을 파는 집, 국수와 보리밥을 파는 집도 보인다. 식사는 대부분 3000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지갑이 가벼워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만원 짜리 조기! 만원에 떨이~!!!' 라고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젊은 청년들부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집에서 만들어 온 두부를 판매하는 할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장사를 한다. 모두들 가던 길을 멈추고 무엇엔가 홀린 듯이 새로 나온 아귀포를 받아들고 질겅질겅 씹기도 한다. 사람 사는 풍경이 온전히 눈 앞에서 이루어진다. 길가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귀여워해주시는 채소가게 할머니의 미소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곳이다.
나는 오늘 육개장 3인분, 쌀, 맛난 젓갈을 샀다. 지나가다 너무나도 맛나 보여서 지갑을 연 찹쌀도나스는 덤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곱디 고운 자태로 앉아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향수를 판매하시던 아주머니께 만원을 주고 향수도 하나 구매하였다. 5만원짜리 한 장을 들고 가서 커다란 장바구니에 한가득 짐을 실어 들어오는 발걸음이 묵직한 이유는 아마도 짐의 무게보다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머리 속에 한가득 들어앉았기 때문일 것이다. 날씨는 상쾌하고 사람들의 미소는 따뜻하니 이보다 더 좋은 주말 오후가 있을까 싶다.
마침.
- Phil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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