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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서대문구] 미분당 - 양지쌀국수
    음식/식사 2019. 4. 17. 18:16

    미분당을 처음 간 건 친한 친구와 함께였다. 친구는 당시 제대 후에 복학을 한 상태였고, 신촌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가끔씩 서울을 들렀던 나는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가지고, 친구 네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친구가 좋아하는 쌀국수 집이 있다며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던 것이 미분당의 첫번째 경험이다.

     

    미분당 외관

    작지만 세련된 느낌을 주는 외관과 그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맛집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 먹도록 쌀국수는 자주 먹어본 적도 없었거니와, 쌀국수를 떠올리면 월남쌈 집에서 판매하는 사이드 메뉴와 같은 느낌만 가지고 있었기에 의심을 쉽사리 거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친구의 말을 들으며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갔었다. 친구는 음식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게 '맛있다'로 끝냈고, 그 외에 이 음식점에서의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미분당은 실내에서 조용히 해야만 한다. 옆사람과의 대화도 자제해야 하며, 음식에만 집중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앞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는 요리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부탁을 해야하며,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는 물 리필과 같은 주문은 그저 빈 컵을 조리대에 올려놓는 것으로 대신 하면 된다. 또한 음식에서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요구하여도 되며, 왠만하면 요리사 분께서 알아서 해주신다는 것이다.

     

    '요리사와 손님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음식점이라니..... 정말 맛에 집중하겠다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기대는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첫 경험은 훌륭했다. 그 이후로는 신촌에 들릴 때마다 미분당을 찾았다. 뿐만아니라 나의 가장 선호하는 해장 음식이 소내장탕에서 쌀국수로 바뀌게 되었다.

     

    기본 상차림

    미분당에 들어서면 역시나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의 디테일들에 감탄하게 된다. 주방을 가운데에 두고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모습은 마치 선술집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각 자리의 뒷 벽면에는 옷걸이가 준비되어 있어서 외투는 그 곳에 걸어두면 된다. 자리에 앉으면 접시와 간단한 장아찌들이 놓여 있고, 물이 한 잔 준비되어 있다. 수저는 테이블 아래의 서랍에 준비되어 있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면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는 요리사를 발견할 수 있다. 고개를 더욱 들어서 위를 바라보면 선반 위에 소스통이 3개 준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머리가 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머리끈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티슈가 입구를 아래 방향으로 하여 손을 간단히 뻗으면 쉽게 뽑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전방 벽면에 고정되어 있다. 손님의 모든 동선이 자리에 앉는 순간 해결될 수 있도록 꼼꼼히 신경 쓴 것을 알 수 있다. 이 공간은 주인이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해놓은 곳이고, 손님은 편안하게 음식에 집중하면 된다.

     

    양지 쌀국수

    주문한 양지 쌀국수가 나왔다. 간단히 내가 쌀국수를 먹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볼까 한다.

     

    1. 가게에 들어서기 30분 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

    2. 국수가 나오기 전, 작은 그릇에 소스를 듬뿍 넣는다.

    3. 국수가 나오면 쌀국수와 그 위에 올려진 숙주를 함께 잡고 위아래의 위치를 바꾸어 숙주를 뜨거운 국물 속에 둔다.

    4. 사장님께 고수를 요청하고, 그 고수를 쌀국수 그릇의 한쪽에 모두 넣는다.

    5. 숟가락을 고수 위에 담그면서 국물을 양껏 맛 본다.

    6. 고수의 맛을 충분히 즐긴 후, 준비된 양파 절임과 그 새콤달콤한 국물을 고수가 위치한 자리에 올리고 마찬가지로 숟가락으로 국물을 양껏 맛 본다.

    7. 그렇게 모두 마셔버린 국물을 추가한다.

    8. 이제 소스를 담아놓은 작은 그릇에 면을 덜어서 비빈다.

    9. 매콤하게 비벼진 쌀국수를 먹고, 뜨거운 국물을 마신다. '맵뜨'를 즐긴다. 그렇게 쌀국수와 숙주, 국물을 모두 먹는다.

    10. 이제 그릇에는 고기만 남아있을 것이다. 이 때 사장님께 숙주와 국물을 추가로 요청한다.

    11. 숙주와 잘 찢어진 양지를 소스에 찍어 먹으며 뜨거운 국물을 함께 먹는다.

    12. 식사를 마친 후, 물을 3잔 마신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항상 쌀국수를 먹었다. 마지막 물을 마시는 것이 조금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이 가게의 마지막 디테일은 이 물이다. 시원함보다는 차가움에 가깝지만, 머리나 이가 시릴 정도의 차가움보다는 시원함에 가까운 온도의 물이라는 것이 우선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일반 물이 아닌 아주 구수한 옥수수차의 맛이다. 옥수수 수염차인지 옥수수차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물이 마지막 용의 눈이 되어 미분당은 하늘로 승천하게 된다.

     

    지난 밤의 열정에 이은 지독한 숙취로 정신이 혼미할 때,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미분당 쌀국수를 즐기며 흘린 땀은 주당들의 눈과 간을 맑게 해준다.

     

    쌀국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 진정한 술꾼이라 할 수 없다.

     

    마침.

     

    - Phil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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