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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10년 동안 나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해주시는 고마우신 디자이너가 있다. 올해 2019년을 기점으로 내가 다닌지 벌써 11년 차에 접어든 헤어살롱이다. 이곳은 1988년부터 영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올해로 31년차가 되는 역사를 지닌 곳이다. 바로 카이스트 안에 위치한 '학부 이발소'이다.
어릴적부터 단정함을 강조하셨던 아부지께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옆머리가 눌릴 정도만 되도 동네 이발소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딱히 원하시는 아들의 머리 스타일이 있었던 것 아니었던 것 같다. 삭발하듯이 밀어버린 머리는 반항심이 가득해보인다며 극구 말리셨던 걸 생각해보면, 그저 당신이 느끼시기에 바리깡을 바싹 깎은 옆머리와 삐쭉삐쭉 위로 솟은 윗머리가 가장 단정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이발소에 다녔기에 2009년 대전에 올라왔을 때 자연스럽게 가까운 이발소를 찾았다. 그 때 학교 안에 이발소가 있다는 것에 '훌륭한 학교라 우수한 학생 복지 시설을 갖추었구나.....'하며 새삼 놀랐던 걸 떠올려보면 진성 촌놈이었던게 틀림없다.
그 때부터 현재 2019년까지 매달 이발소를 찾는다. 학교를 다니는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머리가 너무 짧다며 겨울에만이라도 머리를 좀 기르거나, 헤어샾을 옮겨서 세련되게 스타일을 가져보라며 제안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이발소가 값도 싸고 가까워서 편하다고만 이야기 했었다. - 학부 때는 4000원이었고, 대학원 다니는 동안 가격이 올라서 5000원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6000원으로 올랐다. -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이발소를 고집하는 이유가 귀찮음과 경제성에서 나온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이발소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뺑글뺑글 돌아가는 이발소의 회전간판 아래의 오래된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간이 멈춰버린듯 정겨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라디오를 앞에 둔 채 의자에 앉아 쉬고 계시던 아저씨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시며 '어~ 왔어?' 라고 인사말을 건네신다. 안그래도 올 때가 되었는데 언제 오나하며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아저씨의 말씀을 들으며 안도감을 느낀다. 간단한 인사말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겉옷은 벗어서 소파 위에 대충 던져두고 자연스럽게 의자로 가서 앉는다. 의자는 높낮이 조절이 원래 안되는건지, 고장이 났는데 고치지 않으시는 건지, 키가 큰 나는 의자 끝에 걸터 앉아서 아저씨의 키에 내 머리를 맞춰서 앉아야 한다. 그래서 항상 비딱하게 앉아있는지라 거울에 턱이 두겹으로 겹쳐서 불만이 매우 많아 보이는 표정을 한 내 모습이 여간 우스운 것이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도 아저씨는 항상 '아주 자알 생겼어.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라는 말을 꼭 해주신다.
머리를 앞뒤좌우 전방위로 기울여가며 아저씨의 시야에 맞게 움직여주며 아저씨가 편하게 자르실 수 있게 하는 동안 아저씨는 이런저런 말을 건네신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대부분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처음 학교에서 이발소를 시작하셨을 때, 학교 앞 갑천 너머에 아파트가 생기기 전 그곳이 모두 논밭이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
부자집 딸이었던 사모님과 가난하지만 패기 넘쳤던 젊은 시절의 이발사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던 이야기.....
열심히 공부해서 어서 졸업하라는 말들.....
부모님께 잘하라는 조언.....
그리고 갈 때마다 항상 물어보시는 것이 애인과 잘 지내냐는 것이다. 이전에 학부 때 오래 연애한 친구가 있었는데, 어쩌다 그 친구가 이발소를 한번 들렀을 때 정말 반가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매번 여쭈어보시던 단골 학생의 애인을 보시는데, 눈은 분명 부모님의 눈이셨다. '역시 우리 학생이 훤칠하니 잘 생겨서, 애인도 이쁘구만.' 하는 말도 꼭 얹으셨다. 그 친구와 헤어진 후에는 더더욱 자주 애인이 생겼는지 물어보셨다. 항상 격려해주시며 잘 생기고 좋은 친구니까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주셨다.
오고 가는 여러 말들 사이에 서걱서걱 가위 소리와 바사사삭하는 전동바리깡 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옅은 담배의 향이 묻어있는 은은한 비누 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공간이 이발소이다. 말이 끊어지는 동안에는 오래된 라디오에서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진행자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온다. 더운 여름이면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게 청소가 된 선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곳. 나에게 이발소란 그런 곳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롭게 차례를 기다리고, 인생의 선배님이자 부모님과 같은 이발사 아저씨에게 격려와 위안을 얻는 장소.
'27년 경력 학부이발사 민영기 씨' 라는 제목의 교내 신문에 이발소 아저씨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이발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기술 중에 미용 기술이 저랑 가장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용 기술을 배워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니 처음 미용을 배우고 나서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군대에 있을 당시는 이발사라는 직업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 했었는데 지금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http://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3123)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부터 흰눈이 머리에 소복히 가라앉은 나이에 이르러서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을 다듬어주셨던 아저씨의 인생이 고스란히 이발소라는 공간에 녹아들어있다.
마침 오늘 이발소를 찾았고, 아저씨는 환한 미소로 본인이 받으신 상을 자랑해보이셨다. 공로상이었다. 30년을 학교에서 이발소를 운영하셨고,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가격을 올리는 것도 꺼려하셨던 분이시다. 무한한 축하를 보내며, 내심 공로상이 너무 늦은 건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받았어도 10년 전에는 받아야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상금을 50만원 줬는데, 세금 떼니까 39만원이더구만..... 불로소득이니까!! 허허허."
이발소에서 가장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상패를 이쁘게 전시해놓으신 아저씨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 미소에 가슴이 따뜻했다.
다음 달에도 나는 내 단골 앤티크 헤어살롱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공로상에 빛나는 오랜 경력의 디자이너 장인 분께 나의 헤어스타일을 맡길 것이다.
마침.
- Phil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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