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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음악 2019. 3. 4. 17:13

    금요일 퇴근에 맞추어 서울에 놀러갔다. 퇴근을 하고 운전을 시작해 홍대입구역 쪽으로 도착할 무렵의 시간은 10시 반이 된다. 쉬어가는 시간 하나 없이 'Tango O Nada'로 들어가 불금 밀롱가를 입장한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에 춤추며 시간을 보낸다. 밀롱가가 마친 뒤에는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늦게까지 영업하는 주점으로 가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못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이리저리 나눈다. 이러한 삶은 이미 나에게 일상인 듯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가끔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취미 생활도 지겨운 마음이 들어서 집에만 머무른다. 밥을 짓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먹는다. 배가 부르면 이런저런 집안일들을 조금씩 한다. 절대 다 하지는 않는다. 집안일을 하는 목적이 오로지 배를 꺼뜨리기 위함이라 조금만 하고, 침대에 누워서 잔다. 그러고 잠에서 깨면 다시 음식을 하는 반복된 시간 속에서 나를 재충전한다.


    저번 주말은 조금 특별하게도 아주 귀찮은 일을 했다. 친한 형의 집들이를 가기 위해 수원을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왕복하기로 결정했고, 거나하게 걸칠 술을 대비하여 대중교통을 이동수단으로 선택하였다. 무려 2시간 반에 걸쳐 힘들게 도착한 수원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만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졸업한 선배들의 사회생활 이야기들을 들으며 부러움과 걱정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11시 쯤 자리를 나와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많은 생각을 하기에 적합했다.


    오랜만에 기차와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2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시간이라 그런지 기차와 시내버스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오랜만에 대중교통에서 편안한 자세로 창 밖의 시내 모습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무작위로 틀어놓은 음악 목록 속에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이 나왔고, 많은 추억들과 그에 따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Ref. 브로콜리너마저 Facebook 사진)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


    그 청년들 중 일부였던 지난 날의 친구들과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일을 진행하자면 방향부터 제대로 세워서 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몸에 익었지만, 대학시절의 나와 친구들은 방향도 세우기 전부터 열정에 휩싸여 일을 크게 키우기 쉽상이었다. 크게 키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감정만 앞세워 다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상대를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멀리하겠지만, 그 때의 나와 친구들을 오고가는 욕짓거리들과 주고받는 소주잔으로 이내 화해를 하고는 했다.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청년들이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이제는 '미친 세상'이 얼마나 미쳐서 돌아가는지 절실히 알고 있다. 세상을 욕하자니 답답한 마음을 다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고작 선택한 단어가 '미친'인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며 생겨난 마음 속의 헛헛함이 어느 순간 나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꿈이 많고 생각도 많던 내 자신은 그저 출근을 하고 일을 하며 헛헛한 삶을 당연하게 살아내고 있다. 심지어 익숙한 발걸음으로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동안에도 헛헛한 마음이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미친 세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줍잖은 정의감을 기준으로 불공정한 세상과 불한당들을 불평하고 욕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불만들을 한 바가지의 쌍욕과 함께 털어내며 밤새 술잔을 기울였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지금의 나와 다를 것 없이 조금씩 변해감을 느낀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감내하고, 불합리한 상황에도 참고, 웃음이 아닌 쓴 미소를 지어보이는 친구들의 얼굴에서 나를 느낀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에 잡아둘 수는 없다. 나에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공리(公理)이고, 각자가 이를 위해 변해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순수하고 멍청했던 과거는 그들의 기억 속에 영원이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순수함은 내가 기억해나갈 것이다. 이 미친 세상에 살아남으며 그들의 마음에 굳은 살이 커져만 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과거와 함께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역시 내 안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이 미친 세상에 내가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이 어떤 크기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위로의 인사만이라도 건네고 싶은 날이다.


    마침.


    - Philos -


    #브로콜리너마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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