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술

[서울 서대문구] 94단 야키토리바 - 꼬치

Jyunsu_Philos 2019. 3. 17. 19:24

새벽 두시 쯤 짝찌랑 간단하게 술 한잔할 곳을 찾으며 신촌을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는 학생들로 인해 신촌 거리 모든 곳이 시끄러웠다. 거리 곳곳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워대며 술에 취해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내뱉는 것을 보자면 나의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조용히 그리고 간단히 술 한잔을 하고 싶었는 우리는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걸어다니다가 처음으로 이 가게에 발을 내딪게 되었다.




그럴싸한 간판도 보이지 않고, 야외에서 열심히 꼬치를 굽는 사내만이 발길을 이끄는 이 가게는 아무것도 없는 외부와 잘 어울리는 내부를 가지고 있다. 좁은 실내에 좁게 앉을 수 있는 2인석 테이블과 4인석 테이블이 몇개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정말 이런 데에서 장사를 하는 건가 싶은 의구심이 들테지만, 의외로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곳이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한잔씩 기울이고 있자면 이 곳의 분위기야말로 술 마시기 가장 좋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되는 곳이다.


멋드러지게 콧수염을 기른 잘 생긴 사장님이 열심히 꼬치를 굽는 모습으로 환영 인사를 대신한다. 무거운 문을 밀어 내부로 들어서서 적당한 자리를 잡는다. 내부에도 사장님이 한분 계신데 일본 분이시다. 간단한 소개를 한국말로 해주시고, 메뉴판을 전달받는다. 메뉴판 속의 가격이 많이 저렴해서 흠칫 놀라게 된다. 세트를 우선 주문하여야 후에 낱개의 꼬치들을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가장 저렴한 13000원 정도의 꼬치 10개 세트를 주문한다.




주문을 마치면 이내 사장님께서 양배추와 된장을 가져다 준다. 생양배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인데,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생각보다 맛있다. 짭짜리한 된장과 씹을 수록 단 맛이 진해지는 양배추를 안주삼아 소주 한 두잔 정도의 워밍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주문 직후부터 꼬치를 굽기 시작하기에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음주를 시작하고픈 날에는 타코와사비 정도의 음식을 주문해서 술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 찾았을 때는 재미난 대화라는 안주를 이미 싸들고 온 상황이라 양배추로 심심한 입을 달래며 꼬치를 기다렸다.




제공되는 꼬치는 화려하거나 천상의 맛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잘 구워낸 꼬치의 맛이고, 소주 한잔 기울이며 먹기에 딱 좋은 안주거리일 뿐이다.


그런 날이 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는 날. 그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기분 좋게 취해가고 싶은 날. 한 잔의 술이 달큰하고, 맛 좋은 안주가 가격까지 저렴해서 좀 더 오래 함께 하고픈 날. 하릴없이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 천원짜리 꼬치를 2개씩, 2개씩, 또 2개씩 계속해서 주문하고픈 날. 주문할 때마다 오래 걸리는 안주를 기다리며 말 한마디를 안주삼아 술을 조금씩 입에 머금고 싶은 날. 그런 날, 그런 기분, 그런 시간이 94단에 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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