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요리 - 기본 재료
생각해보면 자취를 한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대학교 4학년에 올라가던 겨울방학 때에 기숙사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갑자기 든 생각을 계기로 자취를 시작했다. 뜨거운 물 부어놓고 불린 면을 먹으면서 팔팔 끓인 라면을 생각했었다. 파를 송송 썰어넣고 계란을 푹 익힌 라면 생각에 도저히 기숙사에서 살 수가 없었다. 뭐 3년정도 기숙사 생활한거면 오래한거라 생각을 했고, 바로 자취를 결정했었다.
자취를 하게 된 계기가 음식이었는데, 요리를 안하면 쓰겠는가.... 처음에는 아주 열심히 요리를 했다. 매끼를 밥을 해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요리라는 것이 매우 귀찮고 귀찮으며, 힘이 들고 힘들며, 경우에 따라서는 나가서 사먹는게 저렴하거나 훨씬 저렴한 음식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매끼를 밖에서 사먹는다고 해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요리를 포기하기는 또 어려웠다.
그래서 점점 음식을 쉽게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에 필요한 과정들을 간소화하고, 식재료를 최소한으로 써서 맛을 올리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정도 자취 요리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된 듯 하여 한번씩 포스팅을 해볼까 한다.
그 전에 오랜 시간에 걸친 재료 간소화 과정으로 검증된 집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재료에 대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카테고리를 나누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상온 보관 가능 재료
1-A. 간장
1-B. 소금 및 향신료
1-C. 감미료
1-D. 기름
1-E. 식초
2. 냉장/냉동 보관 재료
2-A. 액젓
2-B. 장류
2-C. 다시(맛국물) 재료
2-D. 향채소
2-E. 고추가루
위의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자취인에게 언제나 부족한 공간은 우리네의 방이 아니다. 방에는 쓰레기가 가득해도 침대만 비어있다면 그 방은 쾌적한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는 항상 비좁다.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도대체 언제 넣어둔 건지 모를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마음 먹고 치운다고 한들 얼마 못가서 다시 냉장고는 비좁아지게 된다. 그래서 왠만하면 상온 보관이 가능한 재료를 구비하는 것이 자취인들에게는 적합하다.
위의 항목들을 내가 준비한 것들을 예로 들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A. 간장
간장을 그저 짠맛을 가진 액체라고 생각하지 말자. 소금으로 대체되지 않는 간장만의 맛이 있다. 장국 시리즈는 맛간장처럼 쓸 수 있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조금씩 쓰는 편이다. 그리고 국간장, 양조간장, 조선간장 등 간장의 종류가 많은데, 나는 별로 신경쓰는 편이 아니다. 물론 맛이 다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서 쓰면 좋겠지만, 자취 요리에 간장이 달라진다한들 뭐 얼마나 맛이 바뀌겠는가? A 학점을 받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A 플러스 학점을 받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선형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다. 그 필요한 노력의 크기가 지수함수의 형태로 변한다. 쉬운 길로 정도 껏 노력해서 대충 맛나게 만들어 먹자!!
1-B. 소금 및 향신료
아무 소금이든 상관없다. 짠맛만 나면 된다. 대신에 실제로 간을 보기 위한 소금과 요리 과정에서 필요한 소금 정도는 구분하자. 예를 들어 파스타 면을 끓일 때 넣는 소금으로 히말라야산 핑크 솔트를 들어붓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데낄라를 한잔 마시는데 신안 천일염 자루 포대에서 굵은 소금을 한 움큼 꺼내어 놓지도 말자. 아 그리고 마법의 허브 솔트는 간편하게 고기 구울 때 최고다.
후추는 순후추와 갈아서 쓰는 후추를 같이 준비하자. 고기를 구울 때는 갈아서 쓰는 후추가 훌륭한 맛을 첨가해주며, 국물 요리를 할 때는 순후추가 우리네 입맛에 잘 맞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월계수 잎은 저렇게 파는 경우도 있고, 정육점에서 조금씩 소분해서 주는 경우도 있다. 수육을 할 때에 월계수 잎만큼 누린내를 잘 잡아주는 것이 없다. 비싼 커피를 때려넣고, 비싼 된장을 때려넣을 생각하지 말고 월계수 잎을 준비해보자. 3~4장만 넣어도 강한 향으로 고기 누린내를 잡아주기 때문에 가장 값싸게 향을 잡을 수 있는 재료다.
1-C. 감미료
감미료는 단맛을 내는 재료다. 설탕보다는 올리고당이 훨씬 몸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마트에 가보면 올리고당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왠만하면 건강 생각해서 천원 이천원 정도 더 투자해서 올리고당 사자. 그리고 매실 액기스는 당 대신 이용하면 잡내 같은 걸 잡아줘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재료다. 아마도 사진 속의 매실 액기스는 음료용일텐데 뭐 그런거 굳이 따지지 말자. 어쨌든 매실 맛 나는 달달한 액체인 것 같지 않은가.
1-D. 기름
식용유는 최소한 계란 후라이를 하려고 해도 필요하다. 사자. 그리고 올리브유는 서양국수를 해먹을 때 유용하게 쓰이니, 가끔은 파스타가 땡기는 사람이라면 올리브유를 꼭 준비하자. 그리고 한국인 밥상 정서의 핵심적 요소를 담당하는 췜기름은 꼭 준비해야 한다. 향이 별로 없는 공산품 참기름도 상관없지만, 좋은 췜기름을 준비하면 당신의 후각이 호강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E. 식초
식초는 은근히 잘 쓰인다. 그리고 해산물 요리에 식초는 꼭 필요한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농약을 걱정하는 여자친구들이 본인께서 잡수실 과일을 씻으실 때마다 찾는 것이 식초인 경우가 많으니 꼭 준비하자. 과일을 자주 먹지 않는 남자이면서 여자친구까지 없는 솔로라면.... 뭐 집에서 라면말고 더 해먹으려나? 알아서들 하시길. 그리고 발사믹 식초는 올리브오일과 함께 내면 좋은 소스가 되니 기회가 된다면 준비해보자.
2-A. 액젓
자취 초보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에 가장 멍청한 것이 바로 액젓의 가치는 낮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입맛은 간장, 된장, 고추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훨씬 복잡한 입맛을 가진 것이 바로 우리네의 미각이다. 짠맛이 다 같은 짠맛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우쳐야 한다. 액젓이 가진 감칠맛으로 용의 눈을 찍어그리면 그것이 바로 '화룡정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냉장고에 두고 쓰면 된다.
2-B. 장류
장을 말해 뭐해. 고기, 회, 생선구이, 채소 등 뭐든 곁들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국, 반찬 등을 만들 때에도 다 쓰인다. 그리고 된장과 쌈장을 비슷하게 보고, 고추장과 초고추장을 비슷하게 보아서 다 구매를 안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데 제발 그러지 말길 바란다. 다 다른 거다. 돈 조금만 더 들이면 훨씬 다채롭게 맛을 즐길 수 있다. 역시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2-C. 다시(맛국물) 재료
솔직히 이것까지 준비하라고 하는 건 억지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있으면 좋다. 우려낸 국물의 맛과 우려내지 않은 국물의 맛은 차원이 다르다. 위의 사진에는 황태포 잘게 자른 것, 디포리, 다시마가 나열되어 있다. 보관용기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두면 오랫동안 두고 쓸 수 있다.
2-D. 향채소
마늘과 파는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조금씩 파는 경우가 없다. 간혹 조금씩 소분해서 파는 것을 사도, 원최 가격이 비싼지라 속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많이 사서 보관한다. 파는 토막을 내어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마늘은 갈아서 냉장보관을 한다. 마늘은 얼리면 매번 조금씩 쓰기가 불편해서 냉장보관을 한다. 마늘을 갈지 않고 그냥 두면 변색되거나 말라버리기 마련인데, 갈아서 쓰니 뭐 별 문제 없이 쓰기 편해서 계속 저런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2-E. 고추가루
고추가루는 두 가지를 이용한다. 하나는 태양초 고추가루로 약간은 입자가 굵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베트남 고추를 곱게 갈은 것으로 매우 맵다. 이전에는 캡사이신 액체를 이용해서 매운 맛을 내고는 했다. 매번 청양고추를 사다쓰는게 불편하기도 하고, 고추 역시 한번에 많이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 못 쓰고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묘수를 고안해낸 것이 위와 같은 방법이다. 매운 맛이 당기는 날에는 음식에 베트남 고추 가루를 조금 넣는다. 그리고 큰 팩에 든 것은 냉동 보관을 하고, 소분하여 둔 것은 냉장보관을 하는 것이 좋다.
이상으로 자취 요리를 하는데 필요한 최소 재료들을 소개해보았다.
나는 왠만하면 위의 재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이런저런 요리들을 하는 편이다.
앞으로 요리를 하는 것들을 대충 올릴건데, 자세한 사진은 많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간단하게 어느정도 맛을 내는 방법 위주로 올리려고 한다.
마침.
- Philos -